몇해 전까지만 해도 충남도에서 소멸 속도가 가장 가팔랐던 서천 한산면이 달라졌다. 최근 3년간 이곳으로 거주지를 옮긴 청년이 스무명이 넘는다. 며칠 혹은 몇달씩 머무는 ‘관계인구’는 더 많다. 사람이 모이자 문화ㆍ생활 환경이 개선됐고 뒤따라 지역경제가 살아났다. 해법을 찾은 건 농업법인회사인 ‘슬로커’다. 슬로커는 서울·천안·대전 등 도시에서 온 20∼30대 6명이 주축인 회사다. 2019년 행정안전부가 실시한 청년 시골정착 공모사업에 선정돼 ‘삶기술학교’를 열면서 시작했다. 귀촌 희망청년을 모아 한달살기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지방활성화를 꾀했다. 이들이 한산면에 모인 이유는 지역 고유의 문화 때문이다. 슬로커의 김정혁 대표(34)는 “한산면은 마을주민 대부분이 가양주를 빚는 ‘술의 도시’라는 점에 끌렸다”고 설명했다. 청년이 마을에 오면서 지역주민의 삶도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경제적인 부분이다. 이곳 특산물인 소곡주에 매료된 김 대표가 지역민이자 한산소곡주 기능 전수자인 나장연씨(55)와 협업해 소곡주를 생산·판매하고 있다. 나씨는 “청년 감성을 더해 병 디자인을 새로 하고 온라인 판매도 시작하면서 잊힐 뻔한 소곡주가 젊은 세대에게 주목받고 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지난해엔 코로나19로 중단됐던 소곡주 축제를 부활시켰다. 그전까지 마을주민들끼리 하던 일을 청년들이 도와주니 내용도 풍성해졌다. 귀촌청년이 지역문화를 활용해 여러 사업을 벌이면서 경제가 살아난 것이다. 마을 분위기도 크게 바뀌었다. 카페·공방·식당·게스트하우스가 문을 열면서 마을에 활기가 돈다. 어르신들은 쉬는 날이면 식당에 들러 돈가스를 먹고 삼삼오오 모여 차 한잔 마시는 일이 일상이 됐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나씨는 “마을에 카페니 호텔이니 생긴 덕분에 놀러 갈 곳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곳에 가면 젊은 친구들이 먼저 살갑게 다가오고 말도 거는데, 정이 넘치던 옛 시골마을이 됐다”고 덧붙였다. 올해 슬로커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지원을 받아 공유 사무실인 ‘한산디지털노마드센터’를 열었다. 한산면에 ‘워케이션’ 문화를 정착시키고자 한다. 워케이션이란 워크(Work·일)와 베케이션(Vacation·휴가)을 합친 말로, 도시를 떠나 휴가를 즐기듯 일을 한다는 뜻이다. 워케이션하러 온 청년 가운데는 서천의 자원을 활용해 여행업·공방 등을 열고 정착한 사례도 있다. 귀촌 희망자의 전초기지가 되는 셈이다. 한산면은 지방소멸을 극복한 새로운 방법을 보여줬다. ‘소곡주’라는 문화로 청년을 끌어들였고 이들이 확충한 문화·생활 편의시설이 지역주민의 일상을 바꿨다. 서천=지유리 기자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출처> 농민신문